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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하는 개구리를 꿈꾸며

도약하는 개구리를 꿈꾸며

장 은 경

 

“아직도 운전 면허증 없어요?”

“그동안 면허증 안 따고 뭘 하셨어요?”

“요즘 운전면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기본인데.”

라는 질문과 함께 신기하다는 듯이 아래위로 훑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난 늘 그럴듯한 이유로 넘어가곤 했다. 마치 내가 운전 면허증을 딸 일은 절대로 없을 것처럼.

 

주위에 차 가진 사람들이 안 가진 사람보다 많으니 필요하면 얻어 탈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으면 해결되었다. 그동안 면허증이 없어서 사는 데 불편하거나 절실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작년에 노후를 생각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해서 올해 그 계통으로 취직을 하려고 물색하다 보니, 웬만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구하는 사회복지사는 1종 보통 운전면허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서, 용기를 내어 운전학원에 전화부터 걸어 보았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은데, 절차가 어떻게 됩니까?”

“월요일에 오실 때 가까운 병원 가셔서 신체검사와 사진 2장을 가지고 오셔서, 당일 학과교육 5시간만 받으시면 됩니다. 그 다음은 학과시험이 있는데, 그건 그때 가서 또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소요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작년부터 간소화되어 빠르면 2주 늦어도 3주면 가능합니다.”

 

단정하게 화장을 하고 정장차림으로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부터 찍었다. 이력서 쓸 때도 사진이 필요하니 넉넉하게 뽑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신체검사 지정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데스크에서 간호사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물으며 신체 검사서를 작성하고 의사가 내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렸다.

“장 은경님.”

서류를 유심히 보던 의사는 1종 보통과 2종 보통 체크란이 비워져 있자,

“아줌마는 덩치 보니, 1종 보통으로 해야겠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1종 보통으로 체크하고, 무미건조하게 여러 가지 필요한 질문을 했다.

순간 멍해졌다. 사실 지금 필요한 것이 1종 면허증이지만, 계속 고민만 하다가 결정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명령이었다. 한편으론 그 의사가 원망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고민을 들어주어서 고마웠다.

 

월요일 아침, 학원에서 운행하는 통근차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이 차에 탄 수강생을 안심시키려는 말로 학과시험만 통과하면 운전은 70% 딴 것이라고 했다. 첫날은 문제집 한 권 사서 강의 듣고 학원에서 학과공부를 했다. 목요일에 칠곡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각자 배정된 컴퓨터 앞에 앉아 학과시험을 쳤다. 그날 11명 같이 갔는데, 2명만 떨어지고 나머지는 합격이었다.

 

학과시험에 통과하면 장내기능교육이 운전학원에서 2시간 있고, 그 뒤에 장내기능 시험을 친다. 예전에 비해 쉬워지고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운전면허연습장에서 실제로 차를 타고 안내 음성에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기어변속, 기기작동, 돌발 시 상황대처, 50미터 직진 후 정차하면 채점과 동시에 합격, 불합격 방송이 나왔다. 교육시간에 계속 감점 당했던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며, 장내기능 시험도 무사히 통과했다. 연습면허 번호를 발급받고 고민에 빠졌다. 기본 6시간 도로주행교육을 받고 과연 내 실력으로 면허증을 딸 수 있을까? 운동신경이 무딘 나로선 실제 도로에 1톤 트럭 끌고 나가서 우왕좌왕하다가 시동 꺼지고, 차선변경이나 좌·우회전도 못하고 계속 직진만 할 것 같았다.

 

사무실에 계신 강사들과 경리아가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도로연수를 몇 시간 추가로 받고 시험쳐보라고 권했다. 집에 와서도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하루 3시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도로연수하고 토요일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아직은 영하의 날씨라 두꺼운 파카를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지만, 운전대를 잡고 5분이 지나면 긴장과 두려움, 선생님의 끊임없는 지시,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데서 오는 좌절감으로 온몸이 뜨거워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쉬운 2종 보통으로 할 것을.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월요일은 A·B코스를 배웠고, 화요일은 C·D코스를 배웠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변속하느라 차들의 흐름을 읽거나 백미러를 볼 여유조차 없었다. 큰 덤프트럭이나 자전거, 무단 횡단하는 사람,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속수무책이었다.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만 해도 숨차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요일에는 전날 배운 코스를 모두 돌고, 목요일은 선생님도 한계에 다다르셨는지 짜증을 내셨다. 이론은 알겠는데, 손발이 한 박자씩 늦으니 내가 더 짜증이 났다. 그 운동신경으로 아들 둘은 어떻게 낳았는지 라는 강사의 말에 내 안에서 강한 오기가 발동한다. 그러나 금요일, 이 실력으로 내일 시험을 잘 칠 수 있을까하고 끝없이 반문해 본다.

 

드디어 학원에서 시험 칠 수강생을 태우고 도로주행 시험이 있는 출발장소로 향한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시험을 마치고 유턴하는 학원차가 있는 쪽을 응시하며 초조하게 기다린다. 예전에는 2가지 코스를 한 달 내내 연습해서 시험관이 수기로 채점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보았지만, 지금은 4가지 코스를 고작 6시간 연습해서 태블릿PC로 시험을 치니, 감점과 실격처리에 있어 에누리가 없다. 검정하시는 선생님이 도로주행이 끝나고 일단 학원에 가서 주차 한 번 해보자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도로주행은 다행히도 통과한 모양이다. 나와 같이 시작한 남자 대학생은 도로주행 6시간만 받고, 오늘로 벌써 세 번째 시험인데 또 떨어진 모양이다. 돈은 좀 들어도 도로연수를 며칠 더 받은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학원으로 돌아와서 주차공식 대로 주차를 하자, 합격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그동안 구슬땀 흘리며 일주일 동안 도로 연수한 보람이 있었나 보다.

 

아직 차를 타고 복잡한 도로로 자신 있게 혼자서 나갈 수는 없지만, 올챙이로 따지면 개구리가 되는 중간과정쯤 되지 않을까? 개구리가 멀리 뛰기 위해서 온몸을 잔뜩 움츠렸다가 도약하기 위해서 사지의 근육을 최대한 쭈욱 펴듯이, 나도 언젠가는 유유히 차를 몰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가기도 하고, 여유 있게 이야기를 하며 백미러를 볼 수 있고, 주차도 한 번에 잘하고 한 손으로 여유 있게 핸들을 조종할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꾸어 본다. 내 인생에 있어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일들을 반드시 하게 되는 날도 오는 법이다. 그래서 삶이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멋지게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석을 느긋하게 뒤로 빼고, 열려진 창문 사이로 한 손을 내밀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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