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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찬란했던 그 시절

눈부시게 찬란했던 그 시절

-영화 '써니'를 보고-

장 은 경

 

 

몇 년 전 일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의 부부의 날(5월 21일).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느 학생이 내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 오늘 부부의 날인데 뭐 특별한 이벤트 없어요?"

작은아이 친구인 그 아이가 이렇게 물어오자 조금 당황했다. 그래도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며 되물었다.

"너희 집에는 무슨 이벤트 하는데?"

"저희 집요? 저희는 그냥 식구끼리 식당에 가서 밥 먹을 거 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뒤돌아서서 교실로 가는 그 아이의 빈자리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사느라 바빠서 부부의 날인지 내 생일이 다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달력에 표시는 해두었지만 그것은 의미를 잃은 글자일 뿐이었다. 가족 생일은 며칠 전에 장 볼 것을 메모하고 고민하는데, 정작 내 생일에는 드러내놓고 말하기가 그랬다.

'부부의 날과 내 생일을 핑계로 오늘 아이들하고 대구 나가서 저녁도 먹고 시내 구경도 하고 영화도 볼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있으면 좋을 텐데!'

영화를 검색하다가 써니라는 제목은 좀 촌스러웠지만, 댓글을 보고 마음을 달리하게 되었다. 보통 영화는 정말 재미있다는 댓글을 서너 줄 읽고 내려가면 돈 주고 보기 아깝다,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등등의 악플이 달리는 것이 예사인데, 써니는 댓글 한 면이 모두 좋은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감동과 재미를 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밤 아홉시 삼십분에 시작하는 영화였지만 객석은 모두 만원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상영되는 내내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가 되었다. 같이 울고 웃고 느끼고 마음 아파하며,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신디 로퍼의 노래 'Time after time' 과 함께 오갔다.

'Sunny'란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며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줄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딸과 돈 잘 벌어주는 남편 뒷바라지하며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68년생 임나미 (유호정)!

분주한 아침, 가족들 식사며 수발로 종종 걸음 치는 그녀!

세탁된 옷을 반듯하게 널고 눈부신 햇살이 들어오는 발코니에서 창밖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향기로운 커피 마시면서 교복 입은 아이를 바라보다가, 사십대 나미는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 교복자율화로 사복 입은 여고생 나미로 교문에 서 있다. 나도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떠밀려 그 교실로 간다.

 

전라도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 온 첫 날, 걸쭉한 사투리와 함께 자기소개를 한다.

"저는 임나미라고 하는데, 잘 부탁 드립니다" 애써 외워온 어색한 서울말은 전라도 억양과 뒤섞여 더 이상하게 들린다. 이름이 나미라서 그 당시 '빙글빙글'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나미를 떠올리게 하며 반 아이들은 나미를 놀려 댄다.

이때 범상치 않은 인상의 친구들이 어리버리한 그녀를 도와주기 시작한다. 그녀들은 진덕여고 의리 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 배틀 짱 진희, 괴력의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소녀 복희,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였다.

나미는 이름 때문에 놀림 받다가 이들의 새 맴버가 된다. 하루는 경쟁 그룹 소녀시대와 맞짱 대결에서 나미가 긴장한 나머지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전라도 사투리 욕을 신 내린 것처럼 뱉어내면서 위기상황을 종료시킨다.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은 이때부터 의리로 똘똘 뭉친다.

 

꿈 많은 소녀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신들의 동아리 이름을 지어 달라고 사연을 보낸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에서 DJ 종환 오빠는 칠 공주들의 모임 이름을 '써니'라고 지어준다. 이 영화의 제목이면서 주제곡인 보니엠의 써니!!!

써니로 이름 지어진 그녀들은 학교 축제에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얼음공주 수지가 예쁜 얼굴을 다치는 사고로 뿔뿔이 흩어지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25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흐른다.

여고시절 마냥 행복할 것 같았고 즐겁게 재잘대던 그녀들이 25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점점 빛바래고 평범해지고 무너져간다. 어른이 되고 한 가정의 엄마로, 꼴찌 보험 설계사로, 술집에서 손님 접대하며, 시어머니 눈치 보며 가난한 삶에 찌들어 가는 소시민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친정 엄마 병간호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나미는 옆 병실을 지나치며 반가운 이름을 보게 된다.

'하 춘화!'

써니의 대장이며 여장부였던 춘화가 맞나 싶어 병실을 기웃거리는데, 건강하고 활달한 춘화는 어디 가고 불치병으로 몸부림치는 환자 춘화를 발견한다. 두 달 남은 인생이지만, 나미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다. 여고시절 써니들을 찾아서 25년 동안 기다려온 공연을 하자고. 그 날부터 나미는 눈부시게 찬란했던 그 시절의 써니들을 한사람씩 찾아 나선다. 여자들은 우정이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마 이 영화를 보면 여자들도 깊고 진한 우정이 있으며, 단지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가 자신의 친구는 하나씩 포기하고 산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섯 명의 친구는 춘화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모인다. 춘화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한 변호사의 방문에 그녀들은 긴장한다. 그것은 25년 전 못 다한 써니의 춤을 장례식장에서 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산을 가난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써니 맴버들에게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되찾아준 춘화.

 

춘화의 유언대로 보니엠의 써니 노래에 맞춰 여섯 명의 춤 공연은 신나게 끝나가고 있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는데 일곱 번째 친구 수지가 들어오며 영화는 유쾌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춘화가 나미에게 친구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나미야, 두 달 밖에 안 남은 내 인생을 니가 대신 잘 살아 줘. 생각해 보니, 나도 내 인생에 있어 눈부시게 찬란한 주인공이던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너도 이제부터 네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봐!"

앤딩 장면과 함께 출연진의 이름이 올라간다. 그래도 쉽게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관객에게 유쾌하게 웃으며 생각할 것을 던져주는 영화인 것 같다.

 

써니, 내 인생의 가장 눈부시게 찬란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영화 속 주인공 나미와 딸이 하나 되듯이 그 날 우리 네 식구는 흐뭇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 왔다. 엄마도 그때 그랬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그냥 미소로 응한다.

이 엄마에게도 꿈 많고 열정으로 가득한 그 시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꿈을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란 것을 알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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