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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꿀잠

장 은 경

 

 

불현듯 눈을 뜨고 보니, 간밤에 점퍼까지 입은 채로 등을 구부려 새우잠을 잔 모양이다. 맞은편 침대에 큰아이는 밤새 환자용 침대의 식탁을 베개 삼아 앉은 채로 불편하게 자고 있다. 눕지도 못하고 기대지도 못하는 아이가 못내 안쓰럽기만 하다. 벌써 사흘째다.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상태를 살펴보고, 자세를 안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부축하고 저린 부위는 자주 주물러주었다. 아이 옆의 빈 침대에 쪼그리고 낯선 남자들과 한 방에서 자다보니, 토끼잠을 자게 되었다. 아이도 매시간 나를 찾았고, 간호사도 3시간 간격으로 체온과 혈압 체크, 주사 등으로 병실을 찾아왔다. 과연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나마 오던 잠이 싹 달아난다. 새벽 4시 40분.6인용 병실에는 낯선 남자 환자들의 코고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려 퍼진다. 아픈 환자에게 밤은 너무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사흘 전,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고 남편과 함께 영동병원으로 향했다. 큰아이는 두 달 전부터 영동 포도 실습장에서 일해 왔다. 오후에 포도밭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숨을 못 쉬어 응급실로 갔는데, 한시가 급하니 수술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무슨 소리를 해도 저 멀리서 아득하게만 들려왔다. 작은 가방에 옷가지, 속옷, 수건, 세면도구 등을 주섬주섬 쓸어 넣고 급하게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큰아이의 병명은 폐기흉이라고 했다. 이런 병이 있는지도 몰랐다.

 

기흉은 공기주머니에 해당하는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어 이로 인해 늑망강 내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게 되는 질환이다. 일차성 자연 기흉은 키가 크고 마른 남자에게 많이 발생하며, 폐 가장 윗부분의 흉막하 (폐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에 있는 작은 공기주머니에 의해 발생된다. 일차성 자연 기흉 환자의 90% 이상이 흡연자라는 보고가 있다. 아마 작년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큰아이가 피운 담배가 주된 원인인 모양이다. 이참에 해로운 담배라도 끊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밖에 이차성 기흉은 폐실질에 발생한 질환이 원인이 되는 기흉을 말한다. 교통사고나 추락, 외상에 의한 폐실질의 손상으로 발생한다. 기흉 환자의 대부분은 흉관을 삽입한다. 이후 일주일 동안 공기 유출 여부에 따라 수술 시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다행히도 5일 만에 찌그러진 왼쪽 폐가 다시 정상상태로 회복되어 퇴원하라고 한다. 재발이 40-50%라고 하니, 당분간은 집에서 몸조리하며 상태를 지켜보아야 한다. 실습농장의 교수님 내외분께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10일 정도의 말미를 얻어 집으로 오는 내내 온몸이 무거워지며 차츰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오랜만에 잠이라도 푹 자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이다. 5일이나 집을 비웠으니, 빨래바구니와 설거지통이 넘쳐날 것이고, 안주인 없는 집안은 먼지와 머리카락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내 신세가 처량하다.

 

처음에는 숨만 제대로 잘 쉬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 다음은 머리를 침대에 대고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삽입된 흉관을 빨리 제거하고 싶어 했고, 이제는 바깥 상처가 아물면 샤워를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욕망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나보다. 퇴원 후 사흘이 지나자, 수술부위 소독을 위해 가까운 외과에 갔다. 상처가 벌어졌으니, 몇 방울 꿰매자고 한다. 덩치만 어른이지 겁도 많고 여린 아이를 뒤로 하고 진료실을 빠져나온다. 엄마가 없어야 꾹 참고 할 것 같아서 애써 외면해본다. 바깥 대기실까지 아이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병원은 되도록 안 가는 것이 좋은데, 그렇다고 평생 안 아플 수도 없고.

 

남은 일주일 동안 따뜻한 밥이라도 잘 챙겨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아이는 한 번 외출하면 감감무소식이다. 엄마가 얼마나 애가 타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며칠 만에 씻지 못한 아이에게 기분 전환 겸 머리를 감겨 주게 되었다. 구부리지도 펴지도 못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여 최대한 빨리 감겨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7살 이후로 큰아이를 씻겨줘 본 기억이 없다. 21살이 된 아이는 머리털도 무성해지고 많이 억세져 있다. 얼굴과 손발은 거칠고 굳은살이 박여 딱딱해져 있다. 순간 마음이 짠해져 오며 콧등이 시큰해진다. 집에서 해주는 밥 먹고 학교만 오가던 아이가 현장실습생으로 힘든 농사일을 배우다보니, 보드랍던 피부는 어느새 거칠고 두꺼워진 피부로 변한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 가방을 정리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종종걸음을 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 이부자리를 펴고 편하게 누우니 잠이 살살 온다. 안 돼. 마지막 빨래 널고 자야 해. 눈꺼풀이 자꾸만 무겁게 내려온다. 잠의 나락으로 막 빠져들고 있는데, 빨래가 다되었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빨리 널고 자고 싶다. 오늘따라 빨래가 많아서 하나하나 구김살 펴서 널다보니 더 더디다. 이럴 때 좀 대충 대충하면 좋으련만 내 성격이 이를 허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시계는 어느덧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30분만 더 있으면 고2 작은아이가 올 텐데 어쩌나. 잠시지만 이불 속에 들어가 선잠이라도 청해본다. 엄마 없는 동안 야참도 못 먹고 여위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푹 잘 수가 없다. 뭐라도 만들어 주고 얼굴이라도 보고 자야할 텐데. 아아, 지금 자고 싶다.

 

작은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다시 일어난다. 하루 종일 공부에 시달려 아이는 며칠 사이 더 여위어 있어 안쓰러워진다. 그래도 엄마와 형이 함께 있어서 반가운 모양이다. 야참을 먹으며 세모자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만약 그날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렇게 마주보고 웃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걱정과 근심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 꿀잠을 청해 보고 싶다. 건강하고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잠자는 동안 회복, 복구, 재충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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