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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마음 & 누에 맘(Mom)

꿈농 이야기 2016.05.26 14:25 Posted by 농부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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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마음 & 누에 맘(Mom)

 

 

8월의 햇살이 뽕밭을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농약 한 번 안 치고 8년 동안 오로지 친환경 오디 수확에만 매달려왔다. K시 지례면 해발 350미터에서 자라는 오디는 보통 65일경 수확을 시작하면 630일경 갈무리된다. 올해는 농장 경영상황이 여의치 않아 2년 여 다니던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61일부터 남편과 함께 농장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농장정리 및 가공공장 청소부터 하면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일해 나갔다. 그동안 지인들 외에는 판로가 없어서 만성적자가 누적되고, 가공시설투자 한답시고 정부 보조사업비 받아 시설 짓고는 본인부담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수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는 조금 힘들어도 가족끼리 일하다 보니, 남에게 주는 인건비부터 없애고 적자 폭을 조금씩 줄여 나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 따가운 자외선을 피해 선크림, 모자, 수건, 쿨 토시로 중무장을 하고 해거름까지 뽕밭에서 까맣게 잘 익은 오디를 따다보면, 열심히 가꾸고 보살핀 농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마와 등 뒤로 흐르는 구슬땀이 시원한 한줄기 바람과 만나면 바쁜 일손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뽕밭에서 일하다보면 빚 걱정,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 자식 걱정 등은 잠시 내려놓는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본인이 해결할 수 없거나 어쩔 수 없는 주변 상황에서 생긴다고 한다. 가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다정한 뻐꾸기 부부의 소리, 밭 사이로 끼룩거리며 푸드득 날아오르는 장끼소리, 내 어깨 위로 폴짝 내려앉는 작은 청개구리,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노린재, 소리 없이 풀숲을 스쳐 지나는 뱀, 간밤에 진흙 목욕을 하고 사라진 멧돼지 가족의 흔적들 그 하나하나가 한데 어우러져 보라빛 오디와 함께 건강하고 맛있게 익어간다.

오디 수확이 끝나면 가공공장에서 오디원액, 오디 청을 만들어 판매하고 7, 8월에는 한옥 펜션에 놀러 오시는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손님 없는 평일이 점점 늘어나자, 뜨거운 햇살과 수많은 무공해 뽕잎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뽕잎을 따서 깨끗이 씻어서 그늘에서 말린다. 며칠 뒤 그 잎으로 가루를 내어 뽕잎수제비를 만들어 본다. 하지만 이 방법은 노력에 비해 효과적이지 못하고 농가소득과는 거리가 멀어 좌절만 거듭된다.

뽕잎 재활용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지다가 실패해도 상관없으니, 누에 한번 키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가족회의를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누에분양을 위해 상주 잠사곤충사업장을 방문한다. 가을누에 마지막 분양을 하면서 서류에 이름을 적고 누에 키우기 주의사항을 메모하면서 새겨들은 후, 한지에 둘둘 말려진 두 잠 잔 누에 한 장(2만 마리)을 소중하게 뒷자리에 싣고 농장으로 향한다. 일단 깨끗한 뽕잎과 청정지역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우리 아이들을 키워낸 엄마의 마음으로 키우면 성공하리라는 자신감을 가져본다. 누에 키워본 적 있느냐고 묻는 진행요원 아저씨께 처음이라고 말하자, 걱정이 되시는지 키우다가 모르면 자기에게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거듭 당부하신다. 뒤따라 나오시며 배웅하시는 진행요원 아저씨의 염려가 상주에서 김천으로 오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 실패해도 상관없으니 도전 한 번해 보는 거야.’

누에는 원래 야생 뽕나무 잎을 먹고 사는 해충이다. 기원전 3000년 중국에서 누에를 인간이 키우면서 비단을 뽑아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누에는 알, 번데기, 나방이의 단계를 모두 거치는 완전 탈바꿈 곤충으로 알로서 겨울을 난다. 봄이 되어 뽕잎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알에서 하나 둘 애벌레가 된다. 잠사곤충사업장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봄누에(6), 가을누에(8)를 분양한다. 8월 말부터 일주일 정도 키운 두 잠잔 누에를 2(95- 918)동안 별 탈 없이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이라 마음 졸이며 두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 초보 엄마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홍 만선의 <산림경제지, 양잠 편>에는 누에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누에는 통곡하는 소리, 성내는 소리, 욕지거리, 음담패설을 싫어한다. 어디 그뿐인가. 연기도 싫어하고 생선이나 고기 굽는 냄새도 싫어하며 비린내, 누린내에 사향 냄새까지도 싫어한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배가 고프다. 첫 잠은 알에서 깨서 나흘째 되는 날 잤나 보다. 두 번째 잠은 사흘 전에 잤지. 내 고향은 상주 잠사곤충사업장의 잠사이다. 고맙게도 일하시는 할머니 두 분이 우리가 먹을 연한 뽕잎을 깔아 주시고 똥갈이도 해주신다. 아쉽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몸에 난 까만 털옷을 벗기 위해서는 허물도 벗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일어나 부지런히 작은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해야만 한다. 옆에 친구들은 아직도 나처럼 꿀잠 속에서 헤매고 있다. 몸이 처음으로 어디론가 심하게 움직여지며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차는 조심스럽게 고속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나 보다. 간간히 들려오는 아줌마와 아들의 목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나와 내 친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한참을 달려 드디어 우리가 살 집에 도착한 모양이다. 내가 태어난 곳과는 공기도 다르고 온도와 습도도 다르다. 아마 이제 여기서 살게 되나 보다. 옆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깨어나 신선한 뽕잎을 찾아 내 등을 올라타고 더듬으면서 서서히 지나간다. 난 내일 아침까지 좀 더 자고 일어나야겠다.

이른 아침, 신선하고 연한 뽕잎향이 향기롭게 퍼지며 머리 위에서 잘게 뿌려진다. 지금이야. 맛있는 뽕잎을 향해 느릿느릿 기어가자, 갑갑했던 검정 털옷이 벗겨지며 조금 여유 있는 회색 새 옷이 드러난다. 잠자는 동안 난 1.5센티미터로 자랐네. 창밖에는 토닥토닥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오나 보다. 얇은 피부를 통해 습도 80%가 느껴진다. 전에는 할머니들이 뽕잎을 먹기 좋게 썰어 주셨는데, 이 집 아줌마도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 참, 아줌마가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 엄마지.’

균일한 크기로 사방 1.5센티미터로 연하고 깨끗한 잎만 빗물까지 한 장 한 장 닦아서 썰어주신다. 난 빗물에 젖은 뽕잎 먹으면 농병에 걸리는 줄 어떻게 아셨지.

우린 온도와 습도, 냄새, 소리, 스트레스 등에 아주 민감해요. 살살 조심해서 아기 돌보듯 해주세요. 부탁 드려요, 엄마.”

사흘 뒤, 난 허물벗기를 위해 뽕잎을 충분히 먹고 세 번째 잠을 준비한다. 두 번째 잠에서 조금 늦게 깨서 그런지 난 아직 잠이 오질 않는데, 옆에 친구들은 초저녁부터 고개를 1센티미터 정도 들고 잠잘 각도를 잡기 위해 한참동안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난 뽕잎을 조금 더 먹고 잠이 오면 새벽에 자야지. 잠들기 전에 2센티미터 키워서 자야겠다. 친구들보다 몸짱이 되고 싶거든.’

간밤에 오래도록 뽕잎을 먹다가 지쳐 나도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온몸이 노곤하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온다. 졸린다.

하루정도 시간이 지나가고 나니, 우리를 새 침대로 옮기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보인다. 그동안 더러워지고 구멍 난 뽕잎과 가지들, 수북한 똥들을 깨끗이 치우고 새 뽕잎을 깔아주신다.

배가 고파서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지금부터는 하루에 0.5센티미터 정도 자랄 테니 뽕잎 양을 매 끼니마다 배로 늘려 주세요. 이젠 힘들게 뽕잎을 자르지 말고 그냥 주셔도 되어요.’

이번에 허물을 벗고 나니 예전보다 더 하얗게 변했네. 회색에서 유백색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참 대견하죠. 많이 먹었더니 나도 모르게 쑥쑥 자라네요. 4.5센티미터로 자라고 보니 또 잠이 온다. 네 번째 잠을 준비하며 더 열심히 뽕잎을 먹는다. 엄마는 우리가 걱정인지 아직도 우리 몸 크기 정도로 뽕잎을 썰어서 매일 8시간 간격으로 세 끼를 정성껏 챙겨 주신다. 엄마 덕분에 우린 병에도 걸리지 않고 잘 자라고 있어요.

네 번째 잠을 자고 일어난다. 오늘 따라 엄마의 표정이 왠지 슬프고 우울해 보인다. 전에는 밥 주고 뽕잎 갈아주고도 우리가 먹는 모습을 애정 어린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고 가셨는데, 오늘은 밥 주고 잠깐 앉아서 지켜보더니 그냥 가버리신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혹시 우리 밥 준다고 몸살 나신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다음날도 엄마는 우울하고 서글픈 표정이시다. 힘도 없어 보이고 어깨도 축 늘어져 있다.

엄마, 조금만 더 힘내요.’

오늘로 난 53일째이며 6센티미터나 된다. 그런데 엄마네 가족이 저녁 무렵, 모두 우리 방으로 모여든다. 평소 뽕잎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오는데, 오늘은 뽕잎 냄새가 나질 않는다.

엄마, 배고픈데 빨리 밥 주세요.’

몸이 기우뚱하며 공중으로 붕 올라가서는 친구들과 함께 비닐봉지에 가득 담겨져 저울 위에서 잠시 머문 뒤 어디론가 향한다.

무슨 일이지? 비좁아, 얘들아. 숨 쉴 수 있게 옆으로 좀 비켜줘.’

차갑고 어두운 문이 덜컹하고 열리며 갑자기 온몸이 차가워져 온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싸늘한 냉기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일까? 엄마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의식이 흐려져 온다. 몽롱한 의식의 저 너머에서 어제 오늘 우울하고 힘없어 보이며 슬퍼하는 엄마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엄마, 걱정 마세요. 그동안 짧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었어요. 따뜻하고 자상하게 잘 보살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자식 키우듯이 2주 동안 정들인 누에들과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하루 종일 우울하고 힘이 나질 않는다. 누에를 처음 키워보는지라 판로도 없고 해서, 53일째 영하 20도로 동결시켜 십전대보탕에 보약으로 누에를 넣어서 달인다고 하니, 며칠째 밥맛도 없고 마음이 자꾸만 아파온다. 지렁이, 송충이, 자벌레 등 꿈틀이 종류는 정말 싫어하는데, 이상하게도 누에는 처음 데려오는 순간부터 마냥 귀엽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하루 종일 이만마리 먹일 분량의 뽕잎 썰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애지중지 온도, 습도까지 누에 생육시간표대로 맞추어가며 2주를 키웠는데 한순간에 동결시킨다니 이를 어쩌누. 누에는 45일이 한 살이다. 누에는 누에의 일생을 살아가고 사람은 사람의 일생을 살아갈 뿐이라고 애써 외면하고 정당화해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저려오고 아파오는 마음은 어쩌란 말인고. 53일의 누에는 혈당강하에 효능이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사람 좋으라고 수많은 작은 생명을 한꺼번에 죽여야 한다니, 정말 잔인하고 죽을 맛이다.

다른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유년시절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병아리가 어느 날인가 학교 마치고 돌아오니, 밥상 위로 올라왔을 때 받았던 느낌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 충격으로 한동안 닭으로 만든 요리는 입에 대지도 못했었지.

어제 밤늦게 까지 누에 동결을 위해 분리하고 선별한 후에 혹시나 오늘 아침에 기어 나올 잔여 누에를 찾으러 무거운 발걸음으로 잠실을 향한다. 다행히도 밤사이에 뒤집어놓은 뽕잎 더미사이로 흰 꼬물이들이 수백 마리 기어올라 와 있다. 구조 요청하듯이 줄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꼬물이들을 하나하나 다칠까봐 조심스럽게 구조한다. 다시 누에를 키울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어제의 우울을 한순간에 날려준다. 큰 누에에게 치여서 아래 뽕잎더미 속에 파묻혀, 2센티미터 내외로 자란 모습이 안쓰럽고 측은해진다. 엄마가 맛있는 뽕잎 구해서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잘 자라렴. 먼저 간 꼬물이에게 못 다한 사랑을 너희들을 보살피며 어쩔 수 없었던 길을 선택해야만 했던 나를 너희가 대신 용서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할게.

얘들아, 미안해. 큰 녀석들에게 치여 잘 먹지도 자지도 못했지만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다음 생에는 다른 좋은 인연으로 만나도록 하자. 너희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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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머루 2016.06.05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어쩔수 없는 우리 인간의 본능 때문에 ..
    힘내세요.

  2. 2017.03.16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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