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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이 피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28. 21:13

웃음꽃이 피다

 

 

비가 하루 종일 창문 너머로 소리 없이 내린다. 오후가 되자, 몸이 으슬으슬하고 목도 조금씩 조여 오며 아파왔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머그잔에 가득 붓고는 마시기보다 온기를 즐긴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고 있을 때다. '세계테마여행'이라는 프로를 며칠째 보고 있던 것이 떠올라서 채널을 고정한다. 인도네시아의 바우바우 섬에 사는 어느 가족의 일상사를 두형제가 몸소 체험하고 느낀 점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소개한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아름다운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우바우 섬으로 가는 배위에서 찍은 경치가 인상적이다. 구름은 명화 속에서나 나올 법하게 아름답게 떠있다. 두 형제는 배에서 내려 섬을 둘러보다가 재래시장을 향한다.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가 보다. 재래시장에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자기 텃밭에서 나온 소박한 채소, 과일들을 팔고 있다. 카메라가 지나가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건을 들어 올리며 웃어 준다.

장터에 유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 그곳을 향한다. 거기에는 어느 여인이 천연꿀을 팔고 있다. 꿀만 전시된 것이 아니라, 벌집을 그대로 잘라온 모습이 신기하다. 커다란 육각형 모양의 벌집에는 아직도 수십 마리의 벌들이 꿀을 만들고 집을 지키고 있다.

"꿀 사세요, 맛있어요." 라며 촬영하고 있는 두 형제에게 벌집을 조금 떼어 흐르는 꿀을 시식하게 해준다.

"우리 남편이 숲에 들어가서 직접 따왔어요."

여자가 자랑스럽게 가리키는 곳을 보자, 남편은 사람들의 시선이 싫지는 않은지 멋쩍게 웃고 있다.

"맛있죠? 남편은 '숲의 왕'이에요!"

다시 한 번 자랑스럽게 남편을 가리켰다.

우리는 TV를 보다가 한사람이 웃기 시작하자, 전염된 것처럼 다 같이 웃는다. 한동안 웃음꽃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남편이 꿀을 직접 따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저렇게 자랑삼아 부추기고, '숲의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벌집 하나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오만원이란다. 남편이 오천만원, 오억을 번 것도 아닌데, 저렇게 자랑스러울까?

두 형제는 장터에서 만난 꿀 파는 부부의 집을 방문하여, 직접 꿀을 채취하는 것을 체험하러 길을 떠난다. 두 시간 가면 된다는 말에 선뜻 따라 나선다. 숲의 오솔길을 몇 시간 걷고 난 후에야 앞서가던 남자가 잰걸음으로 앞서간다. 커다란 나무 위의 벌집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런데 나무 위로 바로 올라가지는 않고 그 옆의 대나무로 향한다. 대나무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야자수 잎을 보기 좋게 다듬어 대나무의 주변에 두른 뒤 동여맨다. 그러더니 만들어진 대나무 통 끝에 불을 붙여 연기가 피어오르게 한다. 연기 통을 들고 나무 위를 원숭이처럼 올라가서 벌집 주변 가득히 연기가 피어오르게 한다. 연기에 놀란 벌들이 붕붕거리며 벌집 밖으로 나오자, 남자는 벌집에 다가서서 큰칼로 자르기 시작한다. 집으로 가기 전에 한 가지 의식이 남았다. 남자는 나뭇잎에 벌집을 조금씩 잘라서 놓은 뒤에 경건하게 주문을 외운다. 아마 숲의 신에게 꿀을 무사히 채취한 것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기도하나 보다. 우리의 고수레와 흡사하다.

달콤한 꿀을 먹어만 보았지, 이렇게 힘들게 따고 열심히 애쓴 결과물인지 새삼스럽다. 두 형제는 남자의 묵묵히 일하는 뒷모습을 보며,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누구나 처자식을 위해 위험과 고통과 역경을 이겨 나가는 그것과 같다고 나레이터를 덧붙인다.

다시 몇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아까 장에서 자랑스럽게 남편을 소개하던 그 여인과 9남매가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 꿀을 따는 것도 꽃이 있는 4-5개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손님에게 귀한 꿀을 따뜻한 물에 태워 대접하니, 두 형제는 아깝고 목에 걸려 천천히 마신다.

조금 전 '숲의 왕'이라고 천진난만하게 부추기던 여인을 보며 그냥 웃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잔잔하게 웃자 남편은 다시금 크게 웃었다.

'그래! 같이 살면서 조그마한 것에 고마워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

소박한 인도네시아 부부의 행복은 화면을 통해 잔잔히 전해지며, 오래도록 '숲의 왕'이라는 말만 하면 계속 웃음꽃이 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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