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북벽을 향한 삶의 여정
오랜만에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 고단한 삶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볼 수 있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바로 ‘촐라체’였다. 책을 읽는 내내 인상 깊은 장면이나 구절을 그냥 지나치면 잊어 버릴까봐, 수험생처럼 열심히 요약하고 메모해 나갔다. 작품에 몰입하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겨 다시 한 번 꼼꼼히 읽다 보니, 어느새 정답은 ‘내 안에 나를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Km, 남체 바자르 북동쪽 14Km 지점에 위치한 6446미터 봉우리가 촐라체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는 같은 형제 박 상민과 하 영교는 이미 예정된 운명의 프로그램에 의해, 목숨을 담보로 험준한 촐라체 북벽을 오른다. 그들은 최소한의 장비와 식량만으로, 위험하지만 몸의 감각은 최고조에 도달하는 등반 방식을 선택한다. 그들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위험천만한 크레바스나 거대한 빙벽이 아니라, 운명이 만들어 놓은 장벽임을 깨닫게 되고, 6박7일의 사투 끝에 살아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나 자신이 그냥 습관의 관성에 의해 오늘을 무의미하게 살고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나를 위해, 삶이 내게 허락해 준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한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이미 내 삶과 함께 촐라체 북벽을 오를 것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작가가 실제로는 등반하지 않았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방대한 자료, 참고 문헌, 전문 산악인의 도움으로 촐라체를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도 주의 깊게 작가가 인도하는 글을 따라 가면서 교감을 나누다 보면, 내면의 깊이를 더해가며 충분히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나에게 있어서 촐라체는 무엇인가?’
책을 읽고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끈임 없이 되 뇌이게 했던 물음이 ‘박 범신 작가 초청 강연회’를 듣고 비로소 풀렸다. 온몸으로 삶을 느끼고, ‘문학’이라는 피켈을 들고 거대한 빙벽을 실존적으로 올라야 하며, 죽는 날까지 이룰 수 없을지라도 가슴 속에 ‘촐라체’ 하나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 작가 박 범신과 내 삶의 그것이 본질적으로 같음을 깨닫는 순간 스파크가 일어났다.
우리가 생명이 있는 한 운명처럼 넘어야 하고, 이겨 내어야 하고, 견뎌내어야 할, 숨쉬기 위해 온몸의 세포가 간절히 원하는 산소와 같은 그 무엇의 총체가 촐라체를 향하게 한다. 촐라체는 단순히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의 높은 산봉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불리한 조건, 불가능하게 보이는 꿈, 불멸을 향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각고의 도전이 아닐까?
살아가는 동안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문제들, 역경, 시련, 함정들이 ‘크레바스’라고 본다. 만약 이들 형제가 빙하의 균열로 생긴 크레바스에서 주저앉아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단순한 조난이야기로 치부하고 촐라체도 그냥 산으로만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형제는 극한 상황에서 내면의 숨겨진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여 살아 돌아온다.
자기가 정말하고 싶었지만,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 의해 접어 버린 꿈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크게 외쳐 보자.
“난 할 수 있어. 불가능은 없어. 내 삶이 다할 때까지 몇 번이고 죽을 각오로 도전하면 해낼 수 있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쩌면 힘겹게 한발씩 내디디며, 지금껏 살아 온 우리의 자화상일수도 있다. 가파른 촐라체 수직 빙벽에 로프 하나만 의지한 채, 정상을 향해 위로 올라가야만 살 수 있는 박 상민, 하 영교의 내면의 촐라체도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지 않을까?
두 주인공이 가져간 로프의 길이 보다 더 높이 빙벽을 올라가는 시점은 누구나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을 역행할 수 없고, 의지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네 삶과 흡사하다. 그래서 그 시점을 주목하게 된다. 내 가슴 속의 촐라체를 부여잡고, ‘내안의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삶의 소용돌이가 나를 저 밑바닥으로 끌어 내릴 때조차도, 나 자신이 나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소설 촐라체를 읽으며 느낀 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하자고 가끔씩 꺼내 보았으면 한다.
‘정상이란 모든 길의 시작이자 그 귀결점’이라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처럼, 촐라체 하나를 품고 ‘죽음의 지대’를 뚫고 헤쳐 나아가자. 유한한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지각이 맑아지고 민감해지며’ 마침내는 ‘전혀 새로운 생의 비전을 연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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