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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비설거지(수필 한 편 올립니다)

낙엽비설거지

 

 

며칠 전 퇴근 무렵이었다. 하늘은 어둑어둑 흐려져 있었다. 겨울을 재촉하려는지 비구름과 함께 쌀쌀한 바람이 분다. 차에서 내려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맞은 편 하단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세 그루와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하루 일과에 지쳐 돌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둘 반긴다. 잔뜩 웅크린 자세로 핸드백은 한쪽 어깨에 메고, 양손은 바바리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채 1-2 라인을 향해 가고 있다. 하단 아래에서 경비 아저씨는 싸악 싸악 열심히 낙엽을 쓸고 계신다. 그분은 성실하고 인정도 많으신 분이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일삼아 낙엽을 쓸고 계시네요. 힘드시겠어요."

"요즘 늘상 하는 일인걸요. 허허허."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반대편에서 휘리릭 불어온다. 이를 어쩌나!

아저씨가 족히 삼십여 분 쓸어서 모아 놓은 낙엽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더 이상 낙엽이 없다. 그런데 한 줄기 바람이 불자, 하단에 서있던 은행나무, 단풍나무의 낙엽들이 가다렸다는 듯이 우수수 떨어진다. 떨어진 낙엽들은 아파트 주자창을 이리 저리 보기 싫게 나뒹군다. 순간 아저씨가 안쓰러워진다. 그도 묵묵히 움직이던 빗자루를 멈추고, 흩날리는 낙엽을 허탈하게 올려다본다.

정말 무심한 바람이다. 아직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에는 낙하를 기다리는 잎새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다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고 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경비 아저씨의 얼굴을 바라본다. 짜증이 나고 지칠 만도 한데 그의 표정을 보자, 오히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무안해진다. 그의 얼굴은 노란 은행나무보다 더 밝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한 줄기의 바람이 모든 것을 흐트려 놓을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나만 생각하고 내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그냥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거기에 순응하며 다시 웃으며 일어설 수 있었는가?

욕심내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긴 여운으로 다가온다. 그의 환한 웃음의 의미와 다시 열심히 하는 비질의 의미가.

"아저씨, 어쩌죠?"

"허허허, 그냥 다시 쓸어야지요."

"... ... ."

"싸-악 싸-악 싸-악."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게 뭐지요?"

"아예 은행나무 밑동에 가서 발로 몇 번 치세요. 그러면 더 이상 수고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방법도 있네. 허허허."

"수고하세요, 아저씨. 하하하."

나도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조금 전까지도 차타고 오면서 창밖으로 지나치는 은행나무가 참 예쁘게 물들었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있었다. 경비 아저씨는 가을 내내 낙엽이 떨어지면, 누가 보나 안보나 열심히 낙엽비설거지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오늘 한 줄기 바람이 낙엽에 대한 또 다른 가르침을 준다. 한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낙엽이 다른 한사람에게는 노동이고 고역임을. 그의 보이지 않는 수고로 아파트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낙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흐트러지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웃으며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환하게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그 순간에도 그의 싸-악 싸-악 경쾌한 비질 소리는 들려온다. 아마 낙엽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의 비질은 가을이 다가도록 계속될 것이다. 꾀부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힘들 때는 내가 한 유머를 떠올리며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시고 웃으시겠지. 나도 그의 환한 웃음을 오래 기억해야겠다. 삶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휘몰아칠 때, 묵묵히 내가 할 일을 하며 환하게 웃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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