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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짝처럼

헌신짝처럼

장 은 경

 

몇 년 전, 볼품없는 떠돌이 개가 우리 농장으로 찾아 들어왔다. 흰 바탕에 노란 점박이 무늬가 있는 개인데, 좀처럼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녀석이었다. 전 주인에게 학대를 당했는지 아래턱이 약간 돌아가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았다. 먹을 것을 주어도 선뜻 다가서는 법이 없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황토방 아궁이에 불이 잦아들면, 새벽녘에야 그곳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다보니 흰털은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남편은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농장에 오는 개들은 남편을 잘 따른다. 그 떠돌이 개도 언젠가부터 남편이 농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달려 나와 주인이라고 반갑게 맞이하자 그다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봄이 되고 농장에도 할 일이 점점 많아지자, 우리가 농장을 찾는 횟수도 늘어갔다. 농장 입구까지 먼 거리인데도, 짧은 다리로 쏜살같이 달려 나오는 녀석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차에 치일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리면서 하는 첫 마디가 늘 이랬다.

“저리 가! 너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달려드니?”

농장에 손님이 오시면 어디서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저리 가! 이제 그만 짖어. 농장에 오신 손님이야. 저리 가.”

그러면 앙살스럽게 짖는 것을 멈추곤 한다.

 

숯불에 고기 굽는 냄새가 나면, 평소 가까이 다가오지 않던 녀석이 꼬리까지 흔들며 애절한 눈빛으로 다가온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 애처롭게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러워 고기 한 점을 던져주면 가까이 다가와 또 주기를 기다린다.

“저리 가! 너 배고프니? 밥이라도 줄까?”

여느 개처럼 개밥을 만들어 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생긴 거는 토종 똥개인데, 식성은 미국식이라 고기 아니면 도통 먹지를 않는다. 우리는 괘씸해서 입버릇처럼 그 녀석을 보면 “저리 가! 저리 가!” 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에 놀러 오신 손님들이 그 개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우리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떠돌이 개이고 볼품없는 몰골인지라 딱히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손님과 이야기 도중에 ‘저리 가’라는 대목이 나오자, 놀랍게도 사무실 아래공간에 숨어있던 떠돌이 개가 쪼르르 달려온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다시 ‘저리가’라고 하자, 이번에는 꼬리까지 흔들며 짖는다. 우리가 늘 입버릇처럼 ‘저리 가’라고 했던 것이 자기 이름인 줄 안 모양이다.

 

그 뒤로 손님들이 그 개의 이름을 물으면 “저리가, 이리 와.”라고 부른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름이 재미있다고 한바탕 웃는다. 신이 난 ‘저리가’는 재빨리 달려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왜 불렀느냐고 올려다본다. 이름이 저리가인 것이 불쌍해서, 농장 이름 오디세이 중에 오디를 떼어 ‘오디’라고 불러도 이 녀석은 달려오지 않는다. 꼭 저리가라고 불러야만 반갑게 달려와서 귀를 쫑긋 세운다. 정성껏 개밥을 챙겨 주어도 고기 구운 것만 기다리다 보니, 몸은 날이 갈수록 여위고 털은 윤기가 없어져 푸석거린다. 하루는 개를 좋아하는 손님이 개 삼푸로 깨끗하게 씻겨 보았는데, 수고한 보람도 없이 털색은 여전히 잿빛이다. 개밥이나 사료라도 좀 먹으면 때깔이라도 좋을 텐데.

 

작년 여름, 저리가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늘 보이던 녀석이 안 보이니 궁금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저리가를 잊을 무렵 녀석은 힘없이 돌아왔다. 털은 우중충한 회색에 가깝게 변해 있었고, 연신 목 주위를 긁어대고 가려워하며 낑낑거렸다. 어디가 아픈지 아니면 사고라도 당했는지 녀석은 한 쪽 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목줄 아래 부분에 피부병이 생긴 모양이다. 곳곳에 저리가의 털이 솜뭉치처럼 한 뭉태기씩 빠져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갔다. 그렇다고 자가용에 싣고 집근처 동물병원에 데려가기도 찝찝하고 그냥 두자니 신경이 쓰였다. 고민을 하다가 저리가를 지인에게 넘기기로 했다. 아무리 떠돌이 개이고 볼품없는 개였지만, 그래도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마음이 아프고 한동안 생각이 났다. 비록 쓸모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유기견이지만, 주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하고 의리를 지키던 그 모습이 가끔 농장에 갈 때면 문득문득 떠오른다.

오디세이로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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